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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원주를 이야기하다

<원주를 이야기하다>가 나오기까지 - 보헴



모든 일은 한 친구의 '탈서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제 '탈서울'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며, 원주에서 원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막 ‘탈서울’한 그녀를, 아직 원주민이 덜 된 그녀를, 원주민이 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자주 원주를 드나들었다. 사계절이 한 바퀴 돌고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그러니까 그녀가 서서히 원주민이 되는 동안 나는 나대로 원주라는 도시와 공들여 관계해갔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일본인 친구와의 인연으로 교토를 일 년에 두 세 번씩 오가며 무엇보다 교토의 속도에 흠뻑 빠지면서 도시와의 관계가 특별한 사람과의 그것처럼 깊어졌다. 원주와도 흡사 그랬다.

  


그즈음 총 3부작으로 기획한 '원주 음악 시리즈' 두 번째 앨범, <원주를 여행하다>가 세상에 나왔다. 재클린이란 이름으로 극단 노뜰의 음악감독, 영화 오이시맨 OST 제작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음악 프로듀서가 원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이 음악 시리즈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담담한 메시지를 전하기 충분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Big Sound From Small Town”으로도 압축되는.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앨범, <원주를 이야기하다>가 이어갈 메시지이기도 했다. 3부작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마지막까지 이어질 터였다. 다만 이전 두 앨범 <원주를 산책하다>와 <원주를 여행하다>가 원주의 음악가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을 향해 재클린이 전하는 음악적 안부였다면 ‘원주 음악 시리즈’의 마지막은 원주 밖 사람들에게 글과 음악으로 전하는 안부가 아닐까, 짐작했다.  

  


서울에서 보자면 원주가 밖이지만 원주에서 보면 서울이 밖이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역에서 내리는 일과 반대의 여정으로 돌아가는 일은 안과 밖을 뒤집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다시 음악으로 바꿔보자는 재클린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지만 사실 속내까지 흔쾌했던 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9명의 작가 선정이 끝나고 나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와 관계 맺고 있는 그들 중 대부분이 그러나, 이야기를 써본 경험은 없었다. 경험이 충분치 않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무엇보다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그런데 냈다. 단 한 명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그래서, 누가 이 작업에서 뭘 얻었냐 묻는다면 몇 가지 사실과 뒤따르던 감동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야기를 써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늘 있었다는 것. 펜을 주고 기다리면 스스로 입을 열기도 한다는 것.

 


자주 말하곤 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모든 사람이 시인으로,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으면 한다고. 어쩌면 그런 삶에는 영예로운 비평의 찬사나 문학상 같은 건 주어지지 않겠지만, 서울에 살지 않는 예술가들과 서울에 살지만 잊힌 그들 역시 그런 것들과 무관한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원주를 이야기하다’ 작업 과정에서 얻은 가치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무엇보다 차분히 다시 자문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그들에게 고맙다. 계속, 이야기하자. 


원문: 보헴의 블로그 



2013년 3월 22일, 아홉 명이 처음 함께 만난 날, 재클린 작업실 옥상에서. 

보헴의 글을 읽고 나니 문득, 

바람이 많이 불던 그날,

모두가 동시에 흐린 하늘의 어느 지점을 함께 바라보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